『연해자평』은 일간을 주로 삼는 자평의 설이 ‘송나라 때에 이르러서야’ 나왔다고 스스로 말합니다. 지금 사주 풀이의 뼈대로 쓰이는 일간 중심 읽기가 책 속에서도 이미 뒤늦게 생긴 방식으로 기록돼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같은 계보의 다른 책은 말이 다릅니다. 『삼명통회』는 옛 법이 연을 중심으로 보았고 당나라의 이허중이 이미 일간을 주로 삼았다고 전합니다. 명리학 역사에서 일간 중심이 언제 자리 잡았는지는 이렇게 자료마다 갈리며, 아래에서는 어긋나는 대목을 어긋나는 대로 두고 각 자료의 문장만 따라갑니다. 연대는 자료에 나온 것만 옮겼습니다.
이허중에서 서자평으로
이허중, 자료마다 다르게 전하는 방법
당나라의 이허중은 세 자료에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옵니다. 『연해자평』의 ‘논일위주’는 『당서』에 이허중이 태어난 해·달·날·시의 간지와 생극으로 사람의 귀천과 수명을 논했다고 나와 있다고 전합니다. 『삼명통회』 권2의 ‘논연월일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허중이 홀로 일간을 주로 삼고 연·월·시를 함께 보아 생극제화와 왕상휴수로 격국을 세웠으며, 이것이 앞 사람들이 밝히지 못한 점이라 지금의 술가들이 따른다고 평합니다. 반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당사주 항목은 이허중의 점법을 하늘에 있다는 열두 별, 곧 천귀·천액·천권 같은 12성이 태어난 해·달·날·시와 만나는 자리로 길흉을 판단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하고, 이 방식은 간지의 상생·상극과는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같은 인물을 두고 세 자료가 방법을 다르게 전하는 셈입니다. 이허중이 정확히 어떤 틀을 썼는지는 단정하지 않는 편이 맞습니다.
서자평, 일간을 주인으로 세우다
『연해자평』은 이허중을 소개한 뒤 송나라에 이르러 비로소 자평의 설이 있었다고 하고, 일간을 주(主)로 삼는다고 밝힙니다. 연은 뿌리, 월은 싹, 일은 꽃, 시는 열매에 비유하고, 생(生)·왕(旺)·사(死)·절(絕)·휴(休)·수(囚)와 제어·변화(制化)로 사람의 길흉을 가른다고 합니다. 일간을 기준점으로 세우면 나머지 글자에는 일간과의 관계로 이름이 붙습니다. 같은 대목은 갑·을 일간을 예로 들어, 경·신을 보면 관과 살, 무·기를 보면 재, 임·계를 보면 인수와 도식, 병·정을 보면 식신과 상관이라 부른다고 차례로 보여 줍니다. 오늘 사주에서 쓰는 십성의 이름표가 일간 중심 읽기와 함께 따라 나오는 모습입니다.
『삼명통회』는 이 갈림을 짧게 정리합니다. 월은 연에서 이어 세우고 시는 일에서 이어 세우니 연을 본(本)으로, 일을 주(主)로 삼게 되는데, ‘옛 법은 연으로 보고 자평은 일로 본다’는 한 줄이 그 설명입니다. 백과사전은 송나라 서자평이 이허중의 설에 간지와 오행의 상생·상극을 더해 『연해자평』을 지었고, 그 뒤 당사주와 사주가 갈라져 따로 발달했다고 설명합니다.

『연해자평』이라는 책의 얼굴
책 이름의 주인도 갈립니다. 백과사전은 서자평이 『연해자평』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책 안의 회요명서설은 명서의 계보를 당의 이허중과 일행선사, 송의 서승(동재), 명의 왕전 등으로 들고, 『연해』와 『연원』 두 책을 하나로 합쳐 번잡한 것을 덜었다고 밝힙니다. 서승을 계보에 올리고 두 책을 합쳤다고 밝히지만 합친 사람의 이름은 거기 없습니다. 지금 전하는 합본은 위키문헌이 명나라 양종(楊淙)을 엮은이로 표시합니다. 서자평 저작설, 서승으로 이어지는 계보, 양종 합본이라는 세 겹이 겹쳐 있는 셈입니다.
이 글은 서자평이 지었다는 설명과 두 책을 합쳐 엮었다는 설명이 함께 전한다고만 쓰고 어느 쪽도 정답으로 두지 않습니다. 책의 모양이 시대마다 다듬어졌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누가 언제 지금 형태로 엮었는지는 확인한 자료만으로는 닫히지 않습니다.
조선에서는 시험 과목이었다
음양과의 명과학 시험
조선에서 명과학은 관상감이 맡은 학문이었습니다. 음양과는 관상감의 기술직을 뽑는 잡과였고, 초시 정원은 천문학 10인, 지리학 4인, 명과학 4인, 복시는 5인, 2인, 2인이었습니다. 명과학 시험은 『원천강』을 외워서 강독하게 했고, 『서자평』『응천가』『범위수』『극택통서』『경국대전』은 책을 펴 놓고 뜻을 묻는 방식이었다고 백과사전은 설명합니다. 시험은 식년시와 증광시에만 열렸고, 과목마다 통·약·조로 매긴 점수를 합쳐 뽑았으며, 합격자는 관상감에 권지로 배속되어 1등은 종8품, 2등은 정9품, 3등은 종9품을 받았다고 합니다. 시험서 목록에 『서자평』이 올라 있다는 점은 자평의 이론이 조선 관청 안에 들어와 있었다는 확인된 사실입니다.
세종 27년, 맹인에게 가르친 명과학
명과학교육 항목에 따르면 1445년(세종 27)에 나라에서 맹인에게 명과학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총명한 맹학생 10명을 뽑아 서운관(뒤에 관상감)에 소속시켰고, 맹인용 문자가 없던 때라 사흘에 한 번 서운관에 모여 하루는 배우고 이틀은 외워 익히는 방식이었습니다. 정원은 성종 때 18명으로 늘었고, 1474년(성종 5)에는 관상감 안의 교육을 그치고 체아직 2명만을 주어 맹인 기관으로 옮겨 교육하게 했다고 백과사전은 적습니다. 『경국대전』에는 맹인의 명과학 교과서로 열세 권이 올라 있었습니다. 『원천강』『서자평』『응천가』『범위수』『극택통서』『삼진통재』『대정수』『육임』『오행정기』『자미수』『현여자평』『난대묘선』『성명총화』입니다. 이 가운데 『서자평』과 『현여자평』, 두 권의 이름에 자평이 들어 있습니다. 1797년(정조 21)에는 『서자평』과 『범위수』를 빼고 『원천강』과 『협길통의』를 가르치게 했는데, 앞의 두 책이 길일을 가리는 일과 관계없는 추명 방서라는 이유였습니다. 1867년(고종 4)에는 『원천강』도 운명을 추리하는 방법만 있고 길일을 고르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택일의 요점을 뽑아 『선택기요』 상하권을 엮어 쓰게 했습니다. 국가가 필요로 한 쪽은 운명을 풀이하는 일보다 날과 때를 고르는 택일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고 읽힙니다.

세 가지 읽는 틀의 차이
자료별 설명을 표로 모으면 차이가 보입니다. 표는 백과사전 당사주 항목, 『연해자평』 논일위주, 『삼명통회』 논연월일시에서 옮겼습니다.
| 구분 | 백과사전이 설명하는 당사주 | 『연해자평』·『삼명통회』가 전하는 이허중 | 『연해자평』의 자평 |
|---|---|---|---|
| 기준이 되는 것 | 하늘의 12성이 생년·월·일·시와 만나는 자리 | 생년·월·일·시의 간지, 『삼명통회』는 일간을 주로 삼았다고 전함 | 일간 |
| 간지의 상생·상극 | 상관이 없음 | 생극으로 귀천과 수명을 논함, 『삼명통회』는 생극제화와 왕상휴수로 격국을 세움 | 생극에 왕상휴수와 제화를 더해 길흉을 가름 |
| 네 기둥을 읽는 법 | 생년은 초년, 생월은 중년, 생일은 말년, 생시는 평생의 운 | 『연해자평』에는 해당 서술 없음, 『삼명통회』는 연·월·시를 함께 봄 | 연은 뿌리, 월은 싹, 일은 꽃, 시는 열매 |
| 시기 | 당나라 이허중에서 유래 | 당나라 | 송나라 |
| 그 뒤 | 우리나라에 들어와 민간 신앙으로 발전해 그림을 곁들인 책으로 퍼짐 | 해당 서술 없음 | 사주로 갈라져 발달 |
표에서 보듯 같은 이허중의 이름 아래 설명이 갈립니다. 『연해자평』과 『삼명통회』는 간지의 생극을 쓰는 틀을 전하는데, 그 안에서 일간이 중심에 선 시점은 이허중으로 보는 쪽(삼명통회)과 송나라 자평으로 보는 쪽(연해자평)으로 나뉩니다. 앞 시대의 중심 글자가 연이었다는 말은 『삼명통회』의 ‘옛 법은 연으로 본다’는 한 줄에 닿아 있지만, 그 옛 법이 누구의 어느 시기 틀인지는 이 문장만으로 알 수 없습니다. 표의 빈칸은 자료가 말한 만큼만 채웠고 비어 있는 칸은 비어 있다고 두었습니다. 풀이가 고전에 있는 방식이라고 말할 때 어느 층의 고전을 가리키는지, 곧 12성을 따르는 당사주인지 일간을 주로 삼는 계통인지부터 구분하면 같은 말이 서로 다른 틀을 가리키는 혼선이 줄어듭니다.
조선 관청이 이 이론들을 어떻게 다뤘는지는 관상감이 하늘과 땅과 날짜를 나눠 맡은 방식에서 이어지고, 이런 계보 위에서 사주를 어떤 태도로 대할지는 사주는 미신일까에서 다룹니다.